전라북도 장수군 천천에서 금강 상류를 끼고
연평리 신기마을까지 새로 뚫린길을 따라 가다
진안군 동향면방향으로 3km쯤 물 따라 내려가면 진안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많은 유적을 간직한 채 높은 키를 자랑이나 하듯 천반산이 우뚝 솟아 있다.
산정(山頂)의 성터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깃대봉, 시험바위와 대섬 등 정여립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선조조에 율곡 문하에서 수학한 개혁파 정여립은
보수파에 몰려 낙향한 뒤 대동계를 조직하고 민중을 규합해서
장차있을지도 모를 외침에 대비하고자
천반산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했다 한다.
매일같이 깃대봉에 "대동(大同)"이라는 기를 꽂고 부하 장졸들이
뜀바위를 뛰어 넘지 못하면 넘을 때가지 강행하고
시험바위에서는 무예를 어느 정도 익혔는가 시험을 보았다 하며,
장졸을 마당바위에 모아 놓고, 정여립은 장군바위에 서서
정신교육을 시켰다 한다.
이럴 즈음에 조정에서는 정여립이 우매한 백성을 현혹하여
천반산에 들어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반대파의 상소문을 접하게 되어
즉시 반역자 정여립을 체포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
밖의 일을 모르는 여립이 어느날 밤 장군바위에 앉아
우연히 하늘의 명운이 다 된 것을 짐작하고 길게 한숨을 쉰 뒤
장졸들을 마당바위에 모아 놓고
그간에 너희들이 배우고 익히고 갈고 닦은 전술과 전법과 힘은
머지 않아 나라에 환란이 밀어 닥칠 때
나라를 구하는데 요긴하게 써먹을 것이다.
조정은 몽매한 무리들로 가득 차서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구나.
그러니 때가 오면 살신성충(殺身成忠)하라, 원통하고 분하다 !
이제 너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구나 하고는
장졸들과 눈물로 헤어졌다한다.
며칠 후에 천반산의 기슭, 죽도에서
"정공을 모시러 왔다"는 진안 군수의 전갈을 받고
정여립은 장군바위에서 천지신명에게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남긴 뒤
자진 포박되어 억울한 모반(을축옥사)으로 1589년
임진왜란이 나기 3년전에 한많은 생을 마쳤다 한다.
멀리 마이산이 보인다
천반산에서 내려다 본 금강 상류(전북 진안군 동향면)의 물줄기 지금은 용담댐의 상류가 되었다
상기의 정여립 장군의 훈련터와 성터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